G-FMZJY7PKRR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영역과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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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영역과 정체성

muto1149 2025. 5. 8. 13:11

1. 구석기시대(인류 역사의 99%)

*최초의 인류는 39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평안남도 상원군 검은모루동굴 도구와 동물 뼈는 중국 북경원인 시기의 것과 비슷함(호모 에렉투스)

*유적: 평안남도 상원 검은모루, 평양 용곡동, 경기 연천 전곡리, 충북 단양 금굴

평양시 역포구역에서 발견된 머리 뼈가 가장 오래됨

*도구: 돌멩이를 내리쳐서 깨뜨리거나 한쪽 끝을 떼어낸 찍개

손에 쥐기 좋도록 다듬어 만든 주먹도끼, 가로날도끼, 여러면석기

구석기 유적: 애슐리안 주먹도끼 발견(그렉 보웬)

*불의 사용: 발견 이후 수명이 두 배 늘어남(평남 검은모루, 공주 석장리, 제천 창내 한데)

*채집과 사냥을 통해 식량을 마련함(무리이동), 계급이 없는 평등한 사회

*동굴, 강가에 막집

 

2. 신석기시대

*원시농경과 목축을 통해 식량을 생산, 하지만 대부분은 물고기 잡이, 사냥, 야생 식물 채집

*토기: 빗살무늬토기->음식을 삶거나 찌고, 식량 저장이 가능: 인구의 폭증

*쓰임새에 따라 농경용, 공구용, 어로용 간석기를 만들어 사용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 인류가 신석기시대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것은 신석기 혁명

*움집(황해도 봉산 지탑리, 양양 오산리, 청원 쌍청리, 부산 동삼동 등)

50센티 파고, 흙을 고르게 깔거나 불로 태워 단단하게 제작함(습기 방지)

그 위에 기둥과 서까래를 세우고 지붕을 덮음(막집은 땅을 안팜)

*갈돌판 등을 사용하여 곡식을 다듬음

*모계 씨족사회(어머니만 알 수 있음)

*애니미즘: 태양, , 산 바위 같은 자연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음

*토테미즘: 특정 동식물을 숭배(호랑이, )

*샤머니즘: 사람은 죽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영혼숭배와 조상숭배

*신석기시대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가 발견

 

3. 청동기(기원전 15~12세기)철기시대

*경제력과 권력을 가진 지배자나 정치세력의 등장(만주 남부에 한반도 북부 주민 예맥족 등장)

*금속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반도는 기원전 1500년전)

*구리 + 주석 or 아연 = 청동과 황동

*계급사회의 시작(청동거울(거친무늬거울), 고인돌), 동검(전쟁의 시작)

*요하 동쪽이나 한반도 청동기는 중국 황하나 내몽골 남쪽 끝 오르도스 지역의 청동기와 다른 특성(자루를 만들어 끼울 수 있도록 함), 한편, 요서 지역 짐승 모약 장식한 청동기(유목 생활)

*장식이 없고 칼날 모양이 비파를 닮은 형태: 비파형동검

*기원전 4세기 칼날 모양 세련되고 단단한 형태: 세형동검(한국식 동검)

*강을 끼고 있는 야산이나 언덕 지대에 살기 시작(목책(울타리)과 환호(방어 도랑) 발견)

*본격적인 농사 시작(농경무늬 청동기) 솟대= 곡령신을 불러오는 새, 여성과 그릇, 따비와 이랑

*돼지, , , 개 등을 우리에 가둬놓고 기르는 것이 보편화됨

 

4. 고조선

*삼국유사 기원전 2333년이라는데 이 시기는 신석기시대, 기원전 8~7세기 존재(중국 사서)

*곰과 호랑이 이야기는 선사시대 형성되었던 특정 동물 숭배 이야기(토테미즘)-, 바람, 구름 주관 하는 사람 =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한 것, 8조법금(사형, 곡식 보상, 물건 훔치면 노예)

*단군(제사장), 왕검(정치적 우두머리)

*단군신화는 청동기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이 여러 부족을 통합해 나라를 세운 사실을 정당화하고 합법화하려는 이념

*북한에서는 단군신화를 통해 과도한 역사해석(대동강을 5대문명 주장, 고구려 벽화무덤을 단군릉이라 주장, 부정확한 인골 연대 측정),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 과장된 사실

*󰡔관자󰡕: 기원전 7세기 산동반도에 있던 제나라가 조선과 짐승 가죽을 교역하고 정치적인 관계도 맺으려 했다.

*󰡔사기󰡕 「흉노전: 조선의 서쪽에 산융·동호 같은 종족이 있어 100여 개 오랑캐가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다.

*󰡔위략󰡕: 기원전 4세기 조선후국이 왕을 칭하고 연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기원전 3세기 연나라 진개(동호에 인질로 잡혀간 경험이 있는 장군)가 유목종족에 대해 이해하고, 고조선 서쪽을 공격하여 중심지를 한반도 서북쪽으로 옮김

*기원전 2세기 초 독립정권: 이주민 집단이 철기를 가지고 고조선으로 이동

*위만: 연나라 왕 노관의 부하. 노관이 흉노로 망명. 위만은 고조선으로 투항. 기원전 194년 고조선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됨(세형동검+철기문화 발전된 문화). 준왕은 남하(삼한의 왕)

이후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단군은 창업, 기자는 교화, 위만은 참월한자라 해서 정통에 배제되고 삼한의 왕인 준왕을 전통군주로 봄(기자동래설이 부정된 것은 현대 고고학의 발달 이후) 고조선 대부 예가 연나라 사신으로 갔는데, 기자 후손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으로 추정

*기원전 2세기 고조선은 흉노족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세력을 확장

*우거왕(위만의 손자): 중계무역독점, 한강 이남의 삼한 중국과 교역 못하게 함

*한나라는 고조선에게 흉노와의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 한나라 사신 섭하 사망

*한나라 무제의 고조선 침공(순채 5만 육군, 양복 7천 수군, 수군은 격파, 육군 저항)

*한나라는 분열을 획책, 수도 왕검성 함락 후 멸망(기원전 108)

 

5. 한사군(낙랑, 임둔, 진번, 현도)(낙랑을 제외하면 25년간 존속)

*중국적 질서에 한반도를 편입시키려 함

*진번군과 임둔군: 원래 고조선 주변 소국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 곧 폐지(BC. 82)->낙랑군과 현도군에 합쳐짐

*현도군: 압록강 중상류 주민집단 저항으로 요하로 쫓겨났다가 결국 고구려에 통합됨

*낙랑군: 한나라의 식민 정책을 도맡은 중심지, 8조 법금->60조로 늘어남

*평양 정백동1호분에 세형동검 문화 계통 유물과 부조예군(옥저 우두머리) 도장: 낙랑군이 부조 지역에 현을 설치하면서 평양에 옮겨 살게 함

*영국의 역사가들이 로마의 영향권에 들어 있던 시기를 영국사로 다루는 것처럼 낙랑군을 한국사로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음.

 

6. 부여

*󰡔논형󰡕: 부여의 건국 설화, 󰡔사기󰡕 「화식열전: 연의 북쪽에 위치한 나라

*서단산문화, 물산이 풍부하여 많은 인구를 부양, 약탈 필요성도 없음, 진나라는 부여를 구원,

*󰡔삼국지󰡕: 부여 호구 8만호(고구려는 3만 호에 불과), 부여에 예왕지인이라는 글자 새긴 도장

*1~2세기 전성기, 2세기 후반 공손씨와 부여 왕 혼인 관계(고구려 견제), 3세기 전반 국력 유지 󰡔위략󰡕: 풍요롭고 선대 이래로 일찍이 파괴된 적이 없다.

*244년 고구려-위나라 전쟁(부여 협력)

*285년 모용씨의 침략으로 수도가 함락되어 왕이 자결함

*310년대 진나라 멸망, 346년 모용황이 보낸 전연 군대의 급습(사실상 국가 위상 잃어버림)

*457: 고구려 보호 속에 존재하다가 북위 조공 사절 보낸 기록이 남아 있음

*494: 동만주 물길 침략으로 부여 왕과 왕족이 고구려로 망명

*동부여에 대한 설: 1. 285년 두만강으로 달아났던 일부 지배층(동부여)은 독자적 세력을 유지하다가 410년 광개토대왕에 의해 멸망 2. 부여=동부여 3. 설화 속 동부여

*한국역사라는 근거: 시조 주몽이 부여에서 내려왔다는 사실, 남쪽 백제가 부여를 계승했다는 의식, 백제 왕족 성씨가 부여, 538년 사비 천도시 국호를 남부여로 삼았다는 사실 등

*가축이름을 딴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는 4개의 행정구역(사출도), 읍락 호민 지배층, 하호라는 피지배층

*순장이라는 장례 풍습(현실에서의 관계가 사후에도 이어진다고 생각)

많은 경우에는 100단위로, 100~300명을 죽여 순장해버림(대가야도 마찬가지), 형벌(감옥), 살인자 처형, 가족 노비, 도둑질 12배 배상, 투기 부인 죽여 시신 버림(가져가려면 소와 말을 바쳐야 함)

*12월에 열리는 제천행사 영고

*전쟁이 일어나면 소를 죽여 그 발굽으로 점을 침(우제점복)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임(형사취수제)

 

7. 고구려(4~5세기 중앙집권)

*부여에서 갈려져 나온 주몽이 압록강 졸본에 세운 나라(본래는 현도군 중 가장 중심이 되는 현이 고구려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부여에서 도망쳐 내려온 주몽이 졸본에 고구려를 세웠다.

*󰡔삼국지󰡕 「고구려전: 본디 5족이 있었으니,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가 그것이다. 본래는 소노부에서 왕이 나왔으나, 점점 미약해져서 지금은 계루부에서 왕위를 차지

*각 나부에는 다양한 유력자(대가와 소가로 구분)

*태조왕(6:유리왕의 손자): 동해안으로 진출하여 옥저와 동예를 복속시키고 부여와 대립함

*고국천왕(9): 대가들이 사자, 조의 등 관리를 둠(5부족이 5부로 통합)

을파소 등용(고구려 최고의 관직 국상)

진대법 실시(백성 구제 최초)

부인은 제나부 귀족 우소의 딸(5부가 아님)

첫째 동생(발기)에게 왕위를 주려 했으나 거절

둘째 연우에게 왕을 주려고 함

발기 반란(공손탁에게 군사를 빌려 고구려 침공) vs 계수(연우 동생) 연우는 산상왕으로 즉위

*고구려, 313~314년 낙랑군과 대방군 점령, 315년 현도군 공격

*동천왕(11): 요동지역 서안평 공격 함락, 관구검 보복으로 공격

*10월 동맹이라는 제천행사, 국동대혈 이라는 동굴에서 제사

*서옥제: 고구려 때 사위를 머무르게 한 제도

 

8. 백제(4~5세기 중앙집권)

*비류 설화 혹은 온조 설화(건국시조 고구려) vs 구태 설화(대방군이 사라지고 백제가 세워짐)

*비류(미추홀), 온조(위례성): 비류는 소노부 세력 중 이탈, 온조는 계루부 일파

위례성은 풍납토성? 몽촌토성? 의견이 분분(1925년 홍수때 발견)

*246년 기리영전투: 마한이 대방군 기리영 공격했다가 패배-> 백제국이 성장(고이왕이 대방과 혼인 관계) 이후 목지국을 압도하면서 이 지역 대표로 인정을 받음

*온조계1~7, 11,13대왕(근초고왕) 비류계 8~10, 12대왕 차지(설화가 남겨진 이유)

*개루왕(4): 평민 도미의 아내를 뺏음(정절을 지킨 아랑)(개로왕?)

 

9. 삼한·동예·옥저

*󰡔삼국지󰡕 「동이전: 한반도 중남부에 55개 전후의 소국, 10여만 호로 구성된 마한(경기도 충청도), 각각 12개의 소국으로 구성된 진한(경상도 북부)과 변한(경상도 남부)이 존재했다.

󰡔위략󰡕: 위만에게 왕위를 뺏긴 고조선 준왕이 한에서 한왕을 자칭(익산으로 추정)

*진국: 기원전 2세기 말 별개 세력, 고조선 멸망 후 이주민 대거 발생 후 변신

기원전 1세기 초 진한으로 변경 된 것으로 추정(삼국지 기록)

*목지국: 삼한의 맹주로 위상을 갖음,

*진한, 변한: 철 생산지로 유명(일본에 수출)

진한은 경주 사로국에 통합, 변한은 각 소국이 독립국가 유지, 구야국을 중심으로 연맹체

*군장들이 다스림(신지, 읍차)-철기문화수용, 벼농사발달 -5월 수릿날,10월 계절제 실시

*삼한의 제사장 천군은 특별구역 소도(큰 나무를 세우고 북을 달아 신성구역임을 표시)에서 제천행사를 담당

*동예: 강원도 북부지방, 2만 여호, 스스로를 고구려와 같은 족속이라 칭함

-책화: 구역을 나눠 함부로 다른 지역에 들어가지 않음

-무천: 10월 하늘에 제사 지내고 밤낮으로 먹고 마시며 춤을 춤

-족외혼: 동성이면 혼인할 수 없음

-단궁(짧은 활), 과하마(조랑말), 반어피(바다표범 가죽) 생산

-영동지역의 예는 후한 말기 고구려에 복속 되었음

*옥저: 동옥저는 함경도 해안(고구려와 언어 같음)

-왕이 없이 각 읍락은 군장이 다스림(고대국가로 나아가지 못함)(읍군 삼로)

-3세기 무렵 옥저 인구는 수천여 호

-여자를 아예 어렸을때부터 신랑 집에 가서 생활하게 하는 민며느리 제도

-가족이 죽으면 임시 매장했다가 뼈만 추려서 나무곽보관(골장제)

-제천행사는 기록이 없음

 

10. 신라(6세기 이후 중앙집권)

*한반도 동남부 모퉁이에서 일어남(삼국 가운데 가장 발전이 늦은 나라)

*고조선 계통의 유민 6개 촌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음(사로국)

*세 성씨 집단이 경주로 유입(교대로 왕위를 차지)

*혁거세(박씨)(3세기), 탈해(석씨)(울산을 근거지로 하는 것으로 추정, 철 기반)

*아달라 이사금(154~184) 연오랑 세오녀 부부 설화(왜로 가는 것이 쉬운 일이라는 설화)

*우로는 나해 이사금(196~230)의 태자로 포상팔국의 난(남해안 가야 속한 나라의 난) 당시 공을 세움 조분, 첨해 이사금 당시 전투에 승리(사량벌국(상주)) 왕위 다툼에서 왜군에 죽음(일본서기에는 신라가 왜에 점령당했다는 이야기로 바뀜)

*거서간 혹은 차차웅(간은 우두머리, 차차웅은 제사장)이라고도 불리움

*이사금(혁거세가 죽은 뒤 아들 유리와 탈해가 서로 양위 양보하는 것에 유래)의 소국 병합

*4세기(낙랑군과 대방군 소멸) 이후 사로국은 진한 소국에 대한 통제와 병합을 적극 추진함

*마립간(여러 간 중에 으뜸): 경주 대형 돌무지덧널무덤 등장

 

 

11. 가야

*한반도의 철기 기술은 낙동강 일대에 있던 변한(弁韓)에서 꽃핌(12개국 소국)

*철정(鐵錠)이라는 덩이쇠를 낙랑과 일본에 수출

*󰡔삼국지󰡕: “나라()에서 철을 생산하는데, ,,왜가 모두 와서 얻어 갔다. 장사할 때도 철을 사용하는데, 마치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이곳에서 생산된 철이 두 군(낙랑대방)에 공급된다.”

*4세기: 12개 소국 주도한 금관가야의 시조는 수로왕

*가야가 철과 선진문물을 왜에 공급하고 대신에 왜는 가야에 노동력, 군사력을 공급(추측)

*4세기말 : 가야와 왜 사이의 문화교류는 더욱 강화, 가야를 지원하며 신라를 견제하던 백제가 고구려에 패함

*5~6세기 : 교역은 중심지가 김해에서 고령으로 이동(전기가야 해체)

*전기가야 해체 이후 가야와 왜의 교류는 여전히 계속됨, 철 생산 할 수 없었던 왜 사정

*5세기 후반 일본의 무덤 유적에서는 대가야 계통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

*일본의 철 생산은 일반적으로 5세기 후반 또는 6세기부터 시작